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'2018/04/05'에 해당되는 글 1건

  1. 2018.04.05 [책리뷰] 13번째 인격 - 기시 유스케 2

13번째 인격 - 기시 유스케(412pp)

 

 

 

소설은 한신 대지진으로 무너진 곳을 주인공인 유카리 걷는 것부터 시작된다. 건물이 무너지고 도로가 금이 가고, 전쟁이라도 일어난 듯 망가진 건물들 사이로 걷는 사람들의 표정이 일상적이라 꽤 이질적이다. 그건 당연할지 모른다. 그들은 조금만 전철을 타고 나가면 이곳에 절망이 한 편의 영화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는, 평범한 도시에서 잠을 자고, 밥을 먹고 건너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. 그들이 가벼운 불평을 내뱉으며 금이 간 도로를 밟는다. 유카리 역시 그 중 한 명으로 한순간에 지진으로 모든 것을 잃고 공황에 빠진 사람들을 도와주러 온 자원봉사자였다. 그녀는 어릴 때부터 남들에게 말하지 못할 특별한 능력을 갖추고 있었는데, 그 능력이 지진으로 모든 것을 잃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으리라 믿고 내려온 것이었다.

 타인의 감정을 느끼는 능력을 갖춘 그녀는 어릴 때는 그 덕으로 모두에게 사랑받는 존재로 자랄 수 있었다. 하지만 그 과잉으로 점차 심리적으로 위축되고, 결국 사춘기 때에는 정신병원을 전전하다 자살기도까지 하게 된다. 다행히 병원에서 능력으로부터 도망칠 수는 방법을 깨닫게 된 그녀는 성인이 되고 나서 보다 여유 있게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. 평소에는 약을 먹고, 평범하게 지내지만 이렇게 능력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는 일시적으로 약을 끊고,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주었다. 그녀는 그런 방식으로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고 살아가는 사람처럼 타인을 돕는 게 일상적이었다. 치히로는 그런 그녀에게 더 특별하게 다가온 아이였다. 겉보기에는 한신 대지진로 머리를 다친 아이에 불과했지만, 그의 마음에는 다양한 인격이 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. 유카리는 그 목소리를 들었다. 그녀는 치히로에게 연민을 느꼈으며 어떻게 해서든 그녀를 도와주고 싶어 했다. 그 절박한 바람에는 그녀를 자신과 같이 보는 동질감 역시 짙게 깔렸을 것이다.

 소설은 그런 치히로의 인격을 통합하는 것을 목표로 달려가는 듯 보이다가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소녀의 낯선 인격에 초점이 맞추어진다. 낯선 인격이 가진 ‘이소라’라는 이름부터가 다른 인격과 이질감이 느껴졌다. 보통 [한자 사전]에서 필요한 뜻을 가져다 짓는 인격의 이름과 달리 그건 [기비쓰의 가마]라는 단편집에 등장하는 귀신의 이름이었기 때문이다.

‘죽여?’

 위험한 말을 서슴없이 속삭이는 인격을 유카리가 경계하면서 소설의 갈등은 시작된다. 유카리는 사람들을 어떻게든 구하려 노력하는 선한 인간이었고, 이소라는 철저한 악인으로만 보였다. 하지만 다 읽고 나서 그 뻔한 대치가 이 소설 전부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. 소설 중반까지 내가 좋아하는 작가임에도 쉽게 진도가 나가지 않았는데, 아마 소설이 표면적으로 들어내는 유체이탈, 무속신앙, 다중인격 같은 것들에 흥미가 돋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. 하지만 극이 지날수록 나는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었다. 아래의 쓴 소설 중반에 유카리가 가진 의문이, 읽을 당시에는 그저 넘어갔던 암시나 떡밥들이 마지막에 합쳐져 소름이 돋았기 때문이다.

그렇다면...실은 각각의 인격들은 치하로가 조종하는 인형에 지나지 않으며, 치하로의 다중인격장애도 결국 광기 어린 한 사람의 연극에 불과한 게 아닐까?’ <13번째 인격> 118pp

 그 전에 읽었던 기시 유스케에 담담하면서 잔인한 묘사들은 이 소설에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. 그런데도 나는 그 여린 살인귀에게서 ‘공포’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다. 중간에 고비도 있었지만 결코 읽은 게 후회되는 책은 아니었다.

 

-

가장 인상깊었던 문장

 

"'마술'은 반드시 어떤 함정을 지니고 있는 법이다."(286pp)

"결국 감정 그 자체에는 의미가 전혀 없고, 타자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만 진화해왔다는 말인가요?"(345pp)

     <13번째 인격> 중에서

 

 

 

 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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Posted by 책읽는고양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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